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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채 (당시 광주시민)
4월 19일 젊은 시위대와 함께 파출소 및 경찰소까지 시위 습격
4월 19일 오전 광주고등학교에서 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시민들과 함께 시위대를 따라 계림파출소, 충장로파출소를 습격하고, 금남로를 지나 광주경찰서 앞 시위 참여
김영용 (당시 광주공고2년)
4월 19일 광주고등학교 시위를 촉발하게 된 장본인
4월 19일 오전 광주고등학교에서 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당교 교사의 제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리창을 깨고 나오는 시위를 촉발함
김기일대표 (당시 시민대표)
4월 26일 아침9시경 경무대 뜰 이승만대통령과의 면담
이승만대통령이 하야를 결정했다는것은 면담을 마친 시민대표들의
의해 학생과 시민들에게 알려지게 됨.
김긴태 (당시 균명고2년) - (2) 제16대 4·19민주혁명회 사무총장
4월 19일 서울 시내 곳곳 시위현장 증언
서울 시내 인근에서 지나가던 소방차를 잡아타고 서울 시내를 전전하며 시위에 참여
김긴태 (당시 균명고2년) - (1) 제18대 4·19민주혁명회 이사
4월 19일 경무대앞의 시위현장 증언
경무대를 소화하던 경찰의 주저지선이 무너지면서 경찰의 무차별 발포시작
김한섭 (당시 경희대3년) 제14대 4·19부상자회 회장
4월 19일 12시경 중앙청 후문
중앙청 후문 1차저지선 경찰시위 진압이 강력
송호 (당시 22세) 제15대 4·19부상자회 부회장, 제17대 4·19민주혁명회 사무총장
4월 19일 성균관대학생 시위
경찰들이 경무대 앞, 내무부 앞 등에서 무자비하게 발포를 하여 수많은 학생들이
피를 흘리면 쓰러짐.
신승길 (당시 동국대시위자)
4월 19일 해무청앞 경무대로 진출.
무장경관들의 무차별 총탄사격으로 진압했던 당시 현장증언.
유일라 (당시 학생대표)
4월 26일 아침 서울 세종로 경무대 입구 대통령과의 면담 요구
마침내 5명의 학생,시민대표에게 대통령과의 면담이 허용되었음.
이대우 (당시 경북고 학생회부회장) 4·19공로자 회장,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교수
2월 28일 대구 학생 시위
자신들이 정치적 도구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격분한 대구시내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데모하였던 현장 증언.
이명동 (당시 동아일보기자)
4월 19일 오후 1시 30분경 효자동 전차종점(경무대입구)
시위대의 최조목표이자 경찰로서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저지선이었던 경무대를 목표로 일진일퇴를 거듭했던 현장증언.
이청수 (당시 서울법대2년)
4월 19일 국회의사당의 시위현장
서울시내 각 대학교 학생들이 국회의사당앞으로 모임. 이날 국회의사당에
이르기까지 격렬했던 시위현장을 증언.
이항녕 (당시 고려대교수) 홍익대학교 명예교수
4월 25일 오후 3시 교수단회의(서울대교수회관)
300여명의 전국대학 교수들이 모여 ‘교수회'를 개최 이날 오후 5시 30분
‘이승만대통령 하야 요구’를 골자로 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시위,
그 현장을 증언
故임창순 (당시 교수단 시위참가자 성균관대 교수)
4월 25일 대학교수단 시위
이승만대통령의 하야에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대학교수단 시위증언.
정대근 (당시 28세) 제10대 4·19부상자회 부회장, 4·19혁명정신선양기념사업회 실장
4월 19일 데모의 현장
데모의 현장에서 총상을 입고 부상을 당함.
조관휘 (당시 중앙대4년) 제14대 4·19부상자회 부회장, 제18대 4·19민주혁명회 이사
4월 19일 ‘피의 화요일’ 오후 1시 40분
경무대 앞에서의 첫 발포 현장증언.
최경열 (당시 회사원)
4월 19일 국회의사당앞. 광화문-중앙청-경무대로 이동한 데모현장증언.
시민들도 시위에 적극적으로 합세하였던 당시 상황 증언.
한규철 (당시 경희대4년)
4월 26일 이승만대통령의 하야결정
이승만대통령 하야 소식을 알리게 된 배경 증언.